테드 윌리엄스가 원한건 최고가 되는 것 뿐이었다.
최고는 최고의 테크니션 만은 아니다.
1941년 시즌 막판 그의 타율은 0.39955에 이르렀다.
통계적으로 이 타율은 4할이었다.
소속팀은 가을야구 탈락확정 상태였다.
매니저는 당시 타율을 유지했으면 했다.
마지막 경기 출전을 하지말기를 권유했다.
그러나 윌리엄스는 출장했다.
그는 비겁한 방법이 용납되지 않았다.
윌리엄스는 마지막 더블해더를 출전했다.
그리고 총 6안타를 기록한다.,
시즌 최종타율은 4할 6리였다.
이 기록은 메이저리그의 마지막 4할 기록이다.
그는 오랜 꿈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는 위대한 타자로 역사에 남았다.
나머지 그의 일생은 위대한 타자로 기억되었다.
테드 윌리엄스의 기록은 대단하다.
그의 통산타율은 0.344이다.
타격부분 6관왕을 차지한 적도 있다.
그의 통산홈런은 521개이다.
통산타점은 1,893점이다.
그는 해병대 조종사로 군복무를 마쳤다.
때문에 5시즌의 공백이 있었다.
2차대전과 한국전쟁에 참전 경험이 있다.
요즘 선수들은 상상도 못할 경험을 한 것이다.
명예의 전당 입성투수 밥 펠러의 말이다.
“그는 최고의 타자였다.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기록을 세웠을 것이다.
만약 전쟁이 없었더라면.”
조 지마지오 또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시대 최고의 타자는 윌리엄스이다.”
윌리엄스는 1966년 명예의 전당에 등록되었다.
그리고 20세기 메이저리그 올 센트리팀 멤버이다.
그가 밝힌 성공비결은 다음과 같다.
“태어나면서부터 위대한 선수는 없다.
행운도 좋은 선수로 성장하는데 큰 변수는 아니다.
오로지 끊임없는 연습만이 대선수를 만드는 비결이다.”
때문에 그는 타고난 타자라는 말을 싫어했다.
대신 스스로 최고의 연습벌레라 자부했다.
그의 타격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그는 타격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를 했다.
그는 자신만의 타격이론을 정립한다.
그 핵심은 우선 체중을 적절하게 배분한다.
그릭호 이상적인 손목의 위치를 찾는다는 것이다.
그는 공을 쎄개 치려만 하는 것은 아니다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힘을 100% 뽑는 것이다.
그는 메이저리그 최초의 가벼운 배트를 쓴 장타자였다.
당시에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는 거의 삼진을 당하지 않았다.
가벼운 배트로 끝까지 공을 지쳐본다.
때문에 변화구에 속을 확률이 줄어든다.
결국 그는 타자라는 직업인으로 최선을 다한 것이다.
윌리엄스는 거울로 자신의 스윙모습을 지켜본다.
그러면서 상대투수를 분석했다.
시합 전 워밍업 전에도 분석에 열중했다.
투수가 언제 공을 놓는지 관찰을 했다.
어떤 패턴으로 구질을 바꾸는지도 살펴봤다.
이렇게 해서 투수보다 한 수 앞서 나아갔다.
집착이 위대한 타자를 만들었다.
테드 윌리엄스의 이미지 트레이닝
그는 항상 타격순간을 상상했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즐긴 것이다.
어렸을 때 부터 이를 시작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유지했다.
그는 타석에서 항상 신중했다.
그는 로저 혼스비의 충고를 따랐다.
“좋은 공만 골라서 쳐라!”
이 충고를 따른 결과 2,019번 출루를 했다.
최고타율은 0.482에 이른다.
포수보다 선구안이 좋을 정도였다.
이런 집중력으로 40세에도 타격왕에 올랐다.
이는 최고령 타격왕의 기록이다.
이 때의 타율이 0.388이다.
이런 성적을 위해 체력관리에 철저했다.
최대한 걷고 뛰는 것을 자제했다.
대신 타격에 쓰는 근육 단련에 전력했다.
슬과 담배는 하지 않았다.
식사조절과 수면습관도 철저히 관리했다.
그의 자기관리는 엄청났다.
그는 봉사활동도 열심이었다.
소아암 환자를 돕는데 앞장섰다.
소아암 환자들을 위해 기금 수천만달려를 모았다.
그의 승부욕은 대단했다.
그리고 그는 완벽주의자였다.
그능 진심으로 최고가 되려했다.
항상 최고의 선수이고자 했다.
승부욕의 화신이라 할 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