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멍청한 얼간이에서 위대한 홈런왕으로 베이브 루스

 

 

 

 

허먼 베이브 루스의 위대함은 보는 사람을 위압하지 않는다.

그의 원래 소속팀은 보스턴 레드삭스였다.

그는 1920년 보스턴 레드삭스로 트레이드 되었다.

그 때 까지 그의 포지션은 투수였다.

트레이드와 함께 외야수로 포지션을 옮겼다.

그는 투수에서 리그 최고의 강타자로 변모하였다.

하지만 파워배팅의 대명사인 그는 좀 다르게 생각했다.

“삼진아웃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실 루스는 삼진도 잘 당했다.

1,330개의 삼진기록이 있다.

하지만 그는 경기운영 방식이 달랐다.

현대야구에서도 루스와 비슷한 타자는 베리 본즈 정도이다.

루스의 은퇴 때 홈런은 714개였다.

안타는 2,204개를 기록했다.

전체 타수와 홈런수를 비교하면 더 대단하다.

홈런타율이 6할9푼이나 된다.

평균타율은 3할4푼2리 이다.

그는 홈런타구에 대한 엄청난 연구자였다.

그는 스윙할 때 모든 힘을 다해 똑바로 쳤다한다.

권투와 비교하면 카운터 펀치에 비유했다.

배트를 강하게 잡는 것도 중요하다 설명했다.

그는 경기가 없는날 주당으로 유명했다.

생활습관도 고약한 것으로 유명했다.

룸메이트는 그가 아닌 그의 옷과 한방을 썼다 푸념한다.

방탕한 생활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루스도 스타일을 바꿔야 할때 연습에 매진했다.

그는 어렸을 때 부터 과체중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1925년 팀 신검결과 몸무게가 113kg 이었다.

그 시즌 타율이 0.290에 홈런 25개로 부진했다.

팀성적도 전체 7위까지 떨어졌다.

그는 나태했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팀을 정상화 시키기에 앞장섰다.

남들이 자기를 얼간이라 부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해서 시즌 후 팀훈련에 처음 참가했다.

웨이트트레이닝과 스윙을 미친듯이 했다.

1926년 스프링캠프에서 96kg로 감량에 성공했다.

프로선수 데뷔이후 최고의 몸상태로 만들었다.

 

 

 

 

 

다음시즌 타율 0.372에 홈런 47개를 기록하며 승승장구.

1927년에는 타율 0.356에 홈런 60개 164타점을 기록한다.

팀은 월드시리즈에 진출한다.

홈런의 제왕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보름달 같은 배가 초승달 모양으로 바뀌었다.

이 후 철저하게 몸관리를 했다.

루스의 타격기술은 굉장히 정교한 것으로 유명했다.

여섯시즌 평균 50개의 홈런과 0.354타율을 기록했다.

루스의 시대에는 헬멧이 생기기 전이다.

투수의 몸에 맞는 볼은 대단히 위험했다.

그러나 루즈는 한 번도 피하지 않았다.

그는 팀워크를 중시했다.

팀이 하나로 뭉칠 때 승리가 온다는 것을 알았다.

슈퍼스타들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님을 주장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극복한 사랑의 실천

그의 어린시절은 불후했다.

그리고 불량청소년 이었다.

학교에 가기 싫어했다.

카톨릭 학교에서 야구의 재능을 발견했다.

선생님들이 적극 지원했다.

루스는 이 학교를 위해 매년 자선행사를 했다.

최고급 자동차로 지원을 했다.

루스는 불후한 아이를 도왔다.

사망 후에도 이런 선행은 이어졌다.

소외계층을 위한 배이브 루스 재단에 부동산을 기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