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같이 날아서 벌같이 쏘다. 불멸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

 

 

 

 

 

무하마드 알리의 본명 캐시어스 클레이.

12살 때 가진 시합에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몰렸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바로 알리의 입에 있었다.

알리는 매번 시합에 직접 홍보를 뛰었다.

처음에는 아무도 흥미가 없었다.

그러나 흑인 특유의 리듬감 있는 말투로 주목을 끌었다.

무하마드 알리는 진취적이었다.

그는 상대에게 경기전 도발적 이었다.

알리는 그의 독특한 성격이 흥행이 되는 줄 알았다.

60,70년대 세계에서 가장한 선수였다.

그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입니다.

또한 세차례나 프로복싱 해비급 챔피언 이었다.

팬들은 알리의 카리스마에 감동을 했다.

최고가 되기 위한 자기수련

세상에 천재복소로 알려지기 훨씬 전부터.

알리는 최고가 되려면 체육관 안은.

물론 밖에서도 열심히 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10대 때부터 스포츠에.

모든 것을 다 바치려했다.

단순히 샌드백을 두드리는 것보다.

체계적인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알리는.

하루종일 체육관 근처를 떠나지 않고 돌아다녔다.

그러면서 나이 많은 선수들과.

권투기술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코치들에게 모르는 것을 물어보기도 했다.

스태미너와 스피드를 키우기 위해 거울 앞에서.

끊임없이 쉐도우복싱을 연습했고.

아침 5시에 일어나 버스로 스물여덟 블록이나

떨어진 학교까지 뛰어갔다.

가녹 처칠 다운스 경마장에서 경주용 말들과.

경주를 벌이기도 했다.

물론 이런 생활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알리는 이렇게 노력하면 언젠가반드시.

보답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챔피언이 되려면 최고의 코치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 알리는 스스로 코치를 찾아 다녔다.

1956년 저명한 코치 앤젤로 던디가.

루이스빌에 왔을 때 알리는 연습시합에서.

멋진 플레이를 선보여 던디의 눈에 들어왔다.

겨우 14살 밖에 안된 아마추어 복서가.

세계적인 코치와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알리는 시합 후 던디가 묵는 호텔로.

직접 찾아가서 통화 후 미팅을 갖었다.

알리는 무려 3시간에 걸처 던디에게.

훈련방법, 링에서의 전략 등에 관해.

질문을 퍼부었다.

아직 아마추어였지만 이날의 만남은.

4년 뒤 알리가 프로가 되었을 때.

던디가 알리를 지도하기로 결정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프로선수로서 알리는 어렸을 때.

자기 자신을 홍보했던 방법을.

활영해 대중의 주목을 끌었다.

먼저 시합 전에는 반드시 이긴다는 사실을.

주변에 퍼뜨렸고 팬들은 이런 알리의.

예언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1962년 부터 1963년 사이 알리는.

열 번의 경기를 가져서 아홉번의 승리를.

거둠으로써 거짓말쟁이는 아니라는 점을 인정받았다.

마케팅에도 능숙한 복서

링 밖에서도 알리는 자기를 알리는데 주력했다.

TV에 나와서 자신을 찬양하는 시를 낭송하거나.

공항에서 장시간 기자회견을 갖기도 했다.

챔피언이었던 소니 리스턴이 도전을 받아주지 않자.

알리는 밤낮으로 리스턴을 볶아 댔다.

리스턴이 라스베이거스에서 도박을 하는 걸.

발견하고는 그가 하던 블랙잭 게임에 끼어들어.

자신이 돈을 딴 뒤에.

“내가 진정한 챔피언”이라며 온 카지노를.

뛰어다녔고, 리스턴이 주사위 게임으로.

옮겨가자 그것마저 방해했다.

알리는 시합 전에 이슬람으로 개종했으면서도.

챔피언이 된 다음에 개종사실을.

알리기로 결심을 했다.

인종갈등이 심한 미국에서 챔피언.

스스로가 이슬람교도라 자처한다면.

권투 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대한.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결국 해비급 챔피언이 스스로 이슬람이라고.

선언한 것은 인기에는 타격을 줬지만.

알리는 더 나아가 이슬람 성직자가.

될 것을 결심했고 그 뒤 어떤 유혹에도.

이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챔피언이 되고서도 알리는.

꾸준히 기술을 연마했다.

새로운 적을 물리치려면 새로운 기술을.

습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손을 아래로 향해 두면.

훅의 속도가 빠라진다는 사실을.

발견한 뒤 이 훅은 알리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알리는 적을 상대할 때 이전에는.

아무도 씨지 않던 방법을 쓰기로 했다.

1974년 조지 포먼과의 대결에서도.

로프를 등지고 빨리 이동해 상대를 지치게 하되.

자기 힘은 아끼는 전술을 사용했다.

알리는 통산 전력 중에는 패배도 세 번 있다.

그러나 그는 진 게임에는 미련을 갖지 않고.

언제나 앞으로 나아갈 일만 생각했다.

간혹 알리도 상대를 얕보는 경우가 있었다.

1978년 알리는 레온 스핑크스를 과소평가하다.

팸피언 벨트를 빼앗겼다.

하지만 그 해 연말 재대결을 하기로 하고.

연습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뉴올리언스 인근 폰차트레인 소수 근처.

산책로를 임대해 그곳에서.

권투연습에 몰두하는 것 외에.

하루 3~5마일씩 달렸다.

알리는 재대결에서 스핑크스를 누르고.

챔피언 벨트를 다시 찾았다.

1967년 알리는 군 입대를 거부함으로써.

국가에 대한 배신과 병역법 위반 혐의로.

챔피언 벨트를 박탈당하고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알리가 이런 극단적인 방법을 취한 이유는.

이슬람 성직자가 될 사람이 군인이 되어.

사람을 죽일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뒤 알리는 3년간 링에 서지 못했다.

하지만 알리는 자신의 결정이 옳다고.

믿었고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